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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릿저릿

johyuna 2012. 12. 5. 20:43

세상에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들이 있나 모를 정도로 문제점들과 모순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생명존중 사상이 상실되어가는 걸 많이 목격한다.

공동체로서 살아가려는 게 아닌, 자신의 이득에 따라 심지어 생명까지도 잔인하게 이용한다.


순간의 판단으로 생명을 소유하려 하거나 즐거움, 혹은 힘의 표시, 삐뚤어진 욕구의 표출을 위해 잔인하게 이용하는 행동들.

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의 존재가 세상 모든 것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자연의 목장에서 건강한 것들을 먹고 자란 소의 젖을 짜낸다던지, 고기를 얻기 위해 죽이는 것 정도라면 오히려 환영해야 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모든 것은 더 빨리, 더 많이 생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평아리는 부화 직후 바로 기계 속으로 버려져 갈리고 암컷이 닭이 되어서는 알을 많이 낳아지기 위해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거위는 먹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꾸역꾸역 들이미는 호스와 자신의 주둥이가 연결된 채로 모든 것을 들이켜야 한다. 그러다가 입이 찢어지고 내장이 터져도 별 수 없는 일이다.

돼지는 살 찌워지기 위해 빽빽한 우리 안에 갇혀 일어서지도 못한 채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다.

개들은 부드럽게 씹히기 위해 수십번, 수백번의 몽둥이질을 감내해야 하고

바다표범은 영문도 모른째 가죽이 벗겨져 바닷물에 흥건한 피만을 남긴다. 그들의 눈알, 뼈와 얼마 남지 않은 살점들만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을 뿐이다.

애완 동물들은 말썽없이 키워지기 위해 발톱이 뽑히거나 꼬리가 잘린다.

코뿔소, 사슴, 코끼리는 뿔이나 상아가 생채로 뽑힌다. 사람 몸에 좋다는 근거 없는 이유 때문에. 그런 그들은 자연에서 더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다. 죽음만이 기다릴 뿐.

생쥐는 생 채로 뼈가 부러트려지고 다시 접합된다. 심지어는 멀쩡한 몸에 암세포까지 이식된다. 노쇄한 경찰견 또한 명예로운 은퇴 이후 실험실 동물로 전락한다.

비글들은 단지 순하단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실험실에서 굶겨지고 몸이 메스로 갈라지고 다시 붙여지고 또 굶겨지고 그렇게 그들의 몸이 받아낼 때까지 견뎌야 한다.

차라리 짖고 반항이라도 하지, 그 아이들은 그리도 당해놓고 사람을 보면 계속 꼬리를 흔든다.

토끼들은 얼굴만 빼꼼히 내놓아져 자기 몸만한 상자에 갇혀 얼굴과 눈알을 찌르고 들어오는 주사바늘과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양이는 묶인 채로 계속 몸에 들이부어지는 세제에 몸이 녹아내린지 오래다.

설명하기도 싫은 일들이 셀 수도 없이 일어나고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의지가 배제된 억지로 찌워지고 익혀진 고깃덩어리들이, 끝도 모르고 만들어진 화학물질들이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질 지는.


차라리 죽는 게 그들에게 행해지는 인간의 잔인함보다 더 나을 것이다.

죽어야 사는, 죽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 모순의 끝이 바로 우리 앞에 널려있다.

대체 어떤 생명이 다른 생명의 삶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인간은 신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고통 속으로 빠트릴 권리가 없다.


모든 걸 다 한꺼번에 바꾸자는 게 아닌데.

모피는 안 입으면 그만이고 개고기 안먹어도 되는건데, 푸아그라까지 꼭 먹어야 되는건가?

생간에 생피 마시면 그 많은 기생충들은 어디로 들어갈까.

채식주의자가 안되어도 좋으니 건강하고 바르게 만들어진 먹거리를 찾으면 안될까?


내가 안드로메다만큼 먼 이상을 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의 실천과 울부짖음으로 바꾸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행해지고 있으니까.

나 하나 쯤이야에서 나부터라도의 의지라면, 그런 바람과 실행이 모아진다면 세상은 조금은 느리지만, 바르고 건강하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동물과 깊이 교감해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겪었으니 안다.


예전에는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너무 무섭고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길의 모든 생명이 아름다워 보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현실은 시궁창보다 못하지만 말이다.


무작정 작고 예쁘다고 데려오지 말고 그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10~20년 후까지 멀리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짜증나게 할 때도, 많이 아플 때도 있을 것이고 운이 안좋으면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많은 돈이 들 수도 있고 셀 수 없는 시간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우리가 그렇게 되듯이 이빨도 빠지고 눈도 안보이고 귀도 안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때에도 우리가 늘 그들과 함께 한다면, 그 아이들은 약해진다 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지를.


못생겨졌다고, 커졌다고, 아프다고, 군대간다고, 유학간다고, 시집/장가간다고, 임신했다고 버리지 말자.

그렇게 어쩔 수가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며 처음 마음 잊은 채로, 잡았던 손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서 사라져버리지 말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당신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당신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하물며 사람끼리도 만나고 헤어지면 가슴이 아픈 법인데...

슬픈 사랑노래에는 공감하고 아파하면서

자신의 생과 존재를 거부당하는 그들에 대해선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당신에게 진정으로 양심이 있다면, 그들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이 단 1분, 1초라도 있었다면, 절대 함께하지 못할 상황이 온다해도 그들에게 다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나 대신 사랑해 줄 다른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마지막 책임이라도 다 하자.

그들이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들을 선택한 것이니까.

만약 당신이 떠나고 나면 망부석처럼 하루하루를 세다가 보호소에서 안락사로 비참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와 그들의 첫 인연은 너무나 우연히, 아무 부담없이 시작되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고있는 기분이다.

그들에게 절대 상처주지 않고 내 양심이, 마음이 부끄러울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사람들이 내 결심에 대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항상 노력하고 다짐할 거다.


난, 우리가 진정 사람이 맞다면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작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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