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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장르 소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의 작품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나 암울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 딸에게도 앞으로 ‘네가 사는 세상은 점점 안 좋아질 거야’라고 말해준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선에 관한 글을 요청받았을 때, 지금의 20대 혹은 30대 초반 사람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줄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이야기해줄 것인지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역시 내가 늘 그래왔듯 ‘사실’을 이야기해주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요즘 한국의 청춘에게 ‘희망 고문’을 유포하는 멘토가 너무 많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희망 고문’은 가수 박진영이 만든 신조어이자 노래 제목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빌리에 드 릴라당이라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둥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멘토 대부분이 실은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들이거나, 젊은 시절의 별것도 아닌 고생담을 자신이 지닌 부와 명예의 액세서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지금 당신이 겪는 역경이 세계의 부조리함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무능력 때문이라 주장하길 좋아한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강연과 책에서 사회나 정치 문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자기 계발’ ‘힐링’ ‘자아 찾기’에 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혹시 오해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당신들이 겪는 어려움이 온전히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칠 전 당신이 선배나 사수, 상관에게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욕을 처먹은 건 아마 십중팔구 당신이 조직 내에서 개념 없이 처신했거나, 공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자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기 때문일 거다. 개인의 찌질함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짓을 전문용어로 ‘중2병’이라고 한다.


반면 세계를 실질적으로 진보시켜온 고귀한 인간들은 그보다 훨씬 번거로운 과정을 밟아왔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고통에서 사회구조의 모순을 즉각 생각해내지만, 동시에 그 모순에서 타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과 닮은 고통스러운 얼굴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싸운다. 유별하게 이타적이고 윤리적인 DNA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구조의 문제’란 그렇게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를 찍든, 문재인을 찍든, 박근혜를 찍든 20대 당신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상황이 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오차 범위 이내’다. 이명박의 5년이 유독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언론계, 문화계의 진보적 명망가들과 ‘486세대’ 지식인들이 특히 그랬다. 이들에게 박근혜 후보의 낙선은 그야말로 자신의 운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다. 그러나 당신 같은 20대 청년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배드 뉴스’는 누구에게 투표해도 지옥이라는 것, ‘굿 뉴스’는 우리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이 실제로 나락에 떨어지기 시작한 건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정부라 불리던 노무현 정부 시기다. 최악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었고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재벌을 통제할 수 있게 한 헌법적 권리를 사실상 포기하는 각종 법안이 통과됐으며, 부동산 투기를 전혀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IT 호황마저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 시기다. 더 이상 나빠질 여지조차 없이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상황은 충분히 나빴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거대한 침체기의 초입에 와 있고,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하던 ‘광란의 시절’은 완전히 끝장났다. 일본이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 불황의 끝이 대체 언제일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조리하게도, 당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전 세대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기회들과 열악한 선택지들만이 당신 앞에 놓여 있다. 대선후보들 누구나 이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니 ‘청년 실업’이니 떠들어대지만 추상적인 구호뿐이다. 가장 치명적이고 민감한 문제, 극단적으로 쏠려 있는 부의 재분배 방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눙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책임 회피일 뿐이다.2009년 30대 그룹 대졸 초임 삭감 사태는 불황을 빌미로 기성세대가 공모해 젊은 세대의 삶을 통째로 유린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참혹한 ‘범죄’였다. 재벌들은 정규직도 아닌 인턴사원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노조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사회 초년생의 임금을 30%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솔선해서 자기들 임금부터 삭감하겠다는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불과 몇 년 뒤 조사해보니 청년들의 몫은 사라진 채였지만 늘린다던 일자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 대선 후보는 현재까지 없다. 아마 인지하지도 못한 후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누굴 찍어도 지옥’이라고 말한 수많은 근거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들이 순결한 희생자란 소린 아니다. 사회 초년생을 비정규직화하려는 법안에 맞서 전국을 글자 그대로 ‘불바다’로 만들며 싸웠던 프랑스 청년들과 달리 한국 청년들은 대졸 초임 삭감에 이렇다 할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앞의 선택지에 저런 후보들만 있는 것이고 그 후보들이 청년 세대의 고통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런 이들을 정확히 지시하는 한국어는 딱 하나다. 호구. 세 글자로는 호갱님. 선거가 다가올수록 앞서 언급한 ‘언론계, 문화계의 진보적 명망가’들과 ‘486세대 지식인’들은 ‘2030세대’가 문재인이나 안철수를 지지하면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대선에서 누구를 찍든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굳이 투표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확실한 건 당신이 투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성세대에 의해 ‘호구’에서 ‘개새끼’로 격하될 거라는 점이다. 누굴 찍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투표는 하는 게 좋다. 그건 변화 그 자체는 아니지만 변화의 필요조건이다. 중요한 건 투표하기 전에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거기에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좋다. 선거와 정치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러나 정치 참여를 정치 팬덤과 구별하지 못하는 건 더욱 멍청한 짓이다. 대통령은 당신의 엄마나 아빠가 아니며 어떤 명시적 요구도 하지 않는데 소원을 들어주는 기부 천사도 아니다. 정치인은 팬심이 아니라 공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정치가는 당신이 걸친 옷의 브랜드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친구들과 손잡고 있는지를 본다. 나의 제안은 단순하다. ‘팬클럽’ 대신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치인의 진정성’이 아니라 ‘나의 몫’을 요구하라.


글 박권일(계간 편집위원, <88만원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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